나는 어떤 여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묻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왜 정직하고 선(善)한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고 사악(邪惡)한 사람은 월계수처럼 번영 하는가?"
  나는 그녀가 의미하는 선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겠다. 만약 그녀가 의미하는 선(善)은 외향적으로 교회에 가고, 사업관계에 있어서 정직하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자선을 베풀고 자신 가족들에게 충실하고, 교회의 규범과 의식을 준수하는 것이고 반면 사악한 사람은 무신론자이고, 사기치고, 훔치고, 술 마시고,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녀의 사고는 저급(低級)한 것이다. 소위 사악한 사람도 성공, 번영, 그리고 건강을 믿으면 그가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칙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태양은 정직한 자나 그렇지 않는 자나 똑같이 햇빛을 비춘다. 법칙은 도덕이 아니다. 살인자나 성인(聖人)이나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 똑같이 부력(浮力)에 의해서 뜬다. 소위 정직하고 선한 사람도 남몰래 사악과 적의를 품을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외형적 측면에서 선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神)과 그의 법칙의 기준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The oak sleeps in the acorn, the giant sequoia tree sleep in its tiny seed. the bird waits in the eggs; and God waits for His unfoldment in man.
There are no incurable diseases-there are only incurable people; i.e., there are those who belive that they cannot be healed, and according to their belief is it done unto them.
  L.A에 사는 어떤 남자가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그가 일하는 사무실 직원 절반이 감기에 걸려서 직장에 나오지 못했고 그도 걸릴까봐 두려워 했고 그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기를 원했다.
  나는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는 그를 제압하는 힘이 없고 전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암시를 단호히 거절하라고 답변 했고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그에게 주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 안에서 살고 나의 실체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내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그의 실체를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진실되는 것은 나에게 또한 진실 됩니다. 하느님은 아프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도 아프지 않습니다.건강,평화, 기쁨은 나의 것입니다. 나의 기분은 매우 좋습니다."
    When you say, "There is no way out. I have no chance." you are looking at the winds of confusions, fear, and human opinion, but when you remember the Lord, which is the spiritual power within you, absolutely All-Wise and All-Knowing, you will be looking at the solution, the way out, the happy ending, thereby ignoring the winds of human intellect and the waves of despair, melancholia, and depression.
    Faith is accepting as true that which your reason and intellect deny.
    "As a man thinketh in his heart, so is he."
    Thought is the only creative power you know. You should think from the standpoint of God and the eternal verities and not from the standpoint of human opinion, false beliefs, and world propaganda.
    God has no religion and knows nothing about creeds, dogmas, and man-made opinions.
    You are here to reproduce all the qualities, attributes, potencies, and aspects of God and to move from glory to glory.
    Fear is a denial of the power of God and the goodness of God. Fear is faith upside down. Fear is a shadow in the mind, and there is no power in a shadow.
  나는 몇 년 전에 갈리리 호수를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독일에서 살 때 나는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재산, 학벌 등에 있어서 자신이 있었지요.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으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었고, 나는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나는 석방되었지만, 내게 남아 있는 재산이라곤 한 푼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때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느님만 곁에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으로 향했고 하느님은 나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하고, 자유롭고, 번영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지요."
  나는 그에게 어떻게 기도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기도는 대체로 이러했다.
  "하느님은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 주신다. 하느님은 나를 위해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신다. 하느님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알려 주신다. 하느님이 나에게 확신과 평화, 건강, 富를 주신다. 하느님은 나를 지켜 주셨다. 나는 하느님이 영원히 나를 지켜 주실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신뢰의 비결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돈을 빌려 주며 도와주었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그는 자신이 희망했던 것 이상으로 번영했다.
일본인 점쟁이
  일본 오사카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서 머무는 동안 어떤 유명한 상인이 나를 찾아 왔다. 나는 그가 공포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는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점쟁이가 저에게 3개월 안에 저의 사업은 망할 거라고 했습니다." 라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는 그 점쟁이에게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의 목표인 성공, 즉 자신과 그의 고용인과 자신의 사업체에 대한 번영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져 있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야고보서 1:14) 성공에 대한 믿음에 있기 보다는 그는 실패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마음 속을 파산, 부도, 실패로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의 병적 상상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 마음 속에서 스스로 만든 이 안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어떤 실체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사업은 잘 되고 있습니다." 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성공과 실패는 단순히 마음 속의 2개의 사고라는 것을 설명했다.
  만약 그가 실패에 대해서 묵상하면 그는 물론 실패를 끌어 당긴다. 만약 그가 성공하는 자신을 상상하고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고 느끼기 시작하면, 물론 그는 성공하게 된다. 성공에 대한 사고를 지적으로 결합하고 당신의 습관적 사고에 응답하는 주관적 힘을 불러서 성공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얼마나 현혹되었고 잘못된 최면적 암시에 의해서 휩쓸렸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우울하고, 비탄에 빠져 있게 되었는지를 알게되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그 집을 떠나기 전에 그는 성공은 마음에 달려있고,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사고와 느낌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가 다른 이가 준 실패의 암시에 의해서 자신의 목표와 스스로 떨어지게 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점쟁이는 힘이 없고 그 일본인 상인의 지적동의 없이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지적동의, 지적참여(參與)없이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박사님은 우리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지는 것도 자신의 믿음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다음 예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선천적 으로 왼손이 없었던 소녀가 기도로써 손이 자라게 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뿔소와 게에게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Your victory over your enemy(negative thought) is to imagine and feel you now are what you want to be.
  다음 이야기는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홍콩 반도호텔 로비에서 어떤 중국이에게서 물건을 샀다 그는 두 번이나 거스름 돈을 잘못 주었다. 그는 매우 수심에 차게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은 목사님 이십니까?"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신이 이 문을 들어오자 마자 알아 봤습니다."라로 말했다. 그의 걱정거리는 사살(射殺)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였다. "나는 그들의 사악한 일에 끼어 들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는 영문판 성서를 그의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나는 요한복음 6장44절을 펼쳤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이 구절의 의미를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지적 태도가 이끌지 않는 한 아무런 결과나 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적어 줬다."오직 하나의 힘, 하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나는 이 하나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공경합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 누구도 나의 지적 동의 없이 나를 해칠 수 없다 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 동의를 주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외부 상황이나 타인에게 힘을 주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 평화, 그리고 조화를 이 들에게(문제의 사람들의 이름을 말함)보냄니다. 하느님은 그 들과 함께 있고 그 들을 통해서 행동하십니다. 나는 뚫을 수 없는 하느님의 갑옷인 하느님의 사랑안에 쌓여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와 함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와같은 방식으로 하루 세 번에 걸쳐서 한 번에 15분씩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였고 이런 진리는 그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갔고 그는 평화롭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지금만큼 상쾌하게 느낀 적은 없었고 모든 공포는 그에게서 사라졌다 라고 했고 추신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나는 오늘 석간 신문에서 그들은 모두 오늘 아침 바다에 빠져 죽었다 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는 기도로써 악(惡)과 부정적인 상(像)에서 구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